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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서촌 '독립투쟁길' 2

June 25, 2021 | 3 Minute Read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2019년 10월 19일(토)

홍건익 가옥

황학정 바닥 테니스장으로 빠져나가서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배화여대 정문이 나온다. 배화여대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다가 왼쪽 골목을 보면 홍건익 가옥이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구릉을 따라 대문채·행랑채·사랑채·안채·별채 등 송두리째 다섯 채나 조선집과 우물 또한 빙고까지 갖춘 대단한 집이다. 홍건익 가옥은 1936년에 지은 중인가옥이다.

청전화옥 – 이상범 가옥

홍건익가옥 후문으로 빠져나가 온전히 왼쪽으로 걸어가면 왼쪽 골목 실인 막다른 곳에 이상범 가옥이 나온다. 이상범은 이 집에서 1942년부터 1972년 죽을 때까지 43년을 살았다. 그가 살았던 청전화옥에서 남 박노수 선생은 그림을 익히고 조선의 화맥을 이었다. 유언에 따라 청전화옥과 청연산방을 공으로 보존하고 있다.

한 개걸 역사산책자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부엌이다. 광창(光窓)으로 드는 볕이 역시 따스하다.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요리하고 식사를 준비할 생목숨 있도록 설계를 했고, 부엌에 마루를 두어서 개개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지난 차제 구청에서 수리하면서 시멘트로 막아버리기는 했지만, 부엌 마루 오른쪽에는 우물이 있어서 냉장고 역할을 했다고 한다.

청연산방은 청전화옥에 이어져 있다. 화실이자 그림학교이기도 했던 청연산방에서 남정 박노수와 제당 배렴이 문간방에서 스스로 밥을 끓여 먹으면서 불철주야 그림을 배웠다. 청연산방에는 청전이 읽던 책도 과연 있다. 영리 책을 통해서 청전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읽을 핵 있다. 수일 먼저, 『퇴계집』이 눈에 들어온다. 퇴계 선생은 중국 유학을 집대성하고 율곡 선생은 조선성리학을 정립하셨다. 『퇴계집』은 조선중화주의의 자양분이 된 책이다. 다음으로, 『고려사절요』, 『연려실기술』, 『대동야승』 등 각종 우리나라 역사서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조선중화주의에 중국 신서를 접목한 북학사상가들의 책이 즐비하다. 담헌 홍대용의 문집 『담헌서』, 연암 박지원의 연행록 『열하일기』,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등이 그것이다. 청전은 우리 선비의 전공필수과목 문·사·철을 공부하고, 교양필수과목 시·서·화에 몸담았던 것이다.

청전은 일장기말소사건의 장본인 속 범위 명이었고, 네놈 사건으로 말미암아 동아일보사에서 강제 해직되었다. 청전(靑田)이라는 호는 ‘청년 심전’(靑年 心田)이라는 뜻이다. 장승업의 제자이자 조선시대 도화서 그예 화원이었던 안중식 선생의 호가 심전(心田)이니 푸른 밭 청전은 소원 밭 심전의 수제자라는 뜻이다.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시회에서 입선한 이래로 제8회 조선미술전시회에서는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분이었다. 청전은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잇고 중국 관념산수화를 극복함과 동시에 동양화와 서양화를 애한 화폭에 구현함으로써 한국화를 새롭게 했다. 지나가는 행상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청연산방으로 불러서 그림을 보여주고 감상이 어떤지를 묻곤 하였다는 일화는 청전이 모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평범한 한국 사람이 가옹 한국적인 그림이라고 말하는 그림을 그린 분이 즉 청전이다!

겸재가 빼어난 우리 산천을 화폭에 담았다면, 청전은 두드러지지도 않은 채로 예쁠 것도 없이 거저 우리 곁에 있는 언덕과 계곡을 그렸다. 겸재의 그림이 조선중화주의를 배경으로 한다면, 청전의 그림은 북학사상을 배경으로 한다. 겸재의 그림을 진경산수화라고 허울_좋은_과부 붙인다면, 청전의 그림은 미대생 풍속산수화라 할 목숨 있겠다.

체부동성결교회 - 체부동생활문화지원센터

건너편에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가 시작된다. 체부동시장이다. 체부동시장을 가로질러 궐종 편시 못 미친 왼쪽 골목길 안에 빨간 벽돌 건물이 있다. 구 체부동성결교회 체부동생활문화지원센터다.

체부동성결교회는 기도처로 시작했다. 무교정교회에서 누하동 기도처를 최전 시작한 것은 1920년 10월이다. 1924년 2월 통동에서 집회를 새삼스레 시작하면서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부흥이 일어나면서 1924년 7월 분립한다. 소아부흥회를 통하여 크게 성장한다. 성결교회 주일학교운동의 주요한 특징을 형성한 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체부동성결교회는 예배당과 가정 금오재(金五齋)로 이루어져 있다. 매주 금요일 다섯 존함 아이와 다름없이 예배를 드렸다하여 금오재다. 금오재는 조선집이다. 서울시에서 인수하여 복원수리하는 과정에서 금오재 상황 벽채에 가려진 꽃담을 발견한다. 시멘트를 걷어내고 복원한다. 예배당은 빨간 벽돌로 지은 서양식건물이다. 어디까지가 조선집이고 어디부터가 서양교회인지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조화를 뜻대로 이루고 있다.

예배당을 처음 건축한 것은 1931년이다. 신축 당시에는 프랑스식으로 벽돌을 쌓았다. 벽돌의 긴 단면과 짧은 단면을 번갈아 가면서 쌓는 방식이다. 정면에 같은 게슈탈트 같은 규범 문 두 개를 두었다. 문호 두 머리 남녀를 구별함으로써 송두리 유교윤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일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듦으로써 남녀가 평등하다는 근대사상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예배당을 확장한다. 애초 십자가 모양이었던 예배당을 늘려서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늘린다. 이익 틈 늘린 부분은 영국식으로 쌓았다. 임계 단을 쌓을 때는 벽돌의 긴 단면만 드러나게 쌓고, 자네 위에 사과후 단을 쌓을 때는 짧은 단면만 드러나게 쌓는 방식이다. 끝으로 종탑을 쌓으면서 출입문을 막았다. 출입문을 경계 하수 줄이면 내부 공간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두 분파 출입문을 막을 때는 한국식으로 쌓았다. 한 예배당에 무려 3개국의 벽돌쌓기 방식을 동시에 적용한 독특한 건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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